201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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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나성범은 KBO 슈퍼스타의 계보를 이을것인가?

2015-03-15 일, 01:07 By KBReport

망망대해에 작살을 꽉 움켜쥔 배 위의 노인. 바다를 까마득히 더께 앉은 거대한 청새치의 그림자. 그 거대한 존재인 청새치와 볼 품 없는 한 인간의 사투.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큰 울림을 남긴 해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는 ‘위대한 양키’ 야구선수 디마지오에 관한 언급이 두차례 나온다. 그 언급들은 대체로 디마지오를 찬양하는 내용에 가깝다. 무엇보다 디마지오에 관한 2번째 언급은 꽤나 흥미롭다. 

거대한 청새치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거듭하던 중 노인은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디마지오 못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깟 야구선수가 뭐라고 자신의 일생을 건 사투에서 디마지오의 이름을 거는가? 디마지오의 무엇이 노인을 그 망망대해에서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었을까? 우스우면서 놀랍게도, 눈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디마지오의 절제적 우아함과 온화함, 부드러움, 기품이 느껴지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 노인의 뇌리 깊숙한 곳에, 디마지오가 타석에 들어서는 찰나의 순간에, 노인이 살아온 오랜 영겁의 시간 동안 쌓이며 각인됐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바로 디마지오를 ‘국민적 기쁨’이라 불리게끔 만들었으며, 소설 속 노인을 결코 패배하지 않은 위대한 인간으로 완성시켰다.

야구의 신이라고 불린 배리 본즈의 인기는 약물의혹을 받기 이전부터 좋지 않았다. 그의 쌀쌀 맞은 성격과 오만함이 문제였다. 결국 본즈는 미국인들의 전형적인 백인 우상 형(形) 마크 맥과이어, 아름다운 미소와 스윙, 우아한 수비를 가진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인기 싸움에서 번번이 밀리다가 암흑의 길로 빠져들었다. (물론 맥과이어도 칸세코에 의해 약물투여 사실이 밝혀졌다.) 

타격의 달인, MLB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는 팬들과 기자들을 근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윌리엄스는 ‘국민적 기쁨’ 이라 불리며 우아한 기품의 소유자였다는 라이벌 조 디마지오를 월등한 성적으로 앞지르고도 MVP 경쟁에서 자주 고배를 마셨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는 70년이 넘게 지속 되고 있는 마지막 4할 타율을 기록하며 타율 1위, 홈런, 볼넷, 득점, 출루율, 장타율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44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56경기 연속안타로 늘린 디마지오에게 MVP를 넘겨준다. (디마지오는 총루타 1위)  

*테드 윌리엄스(MVP 2회) vs 조 디마지오(MVP 3회)
-윌리엄스 AVG .344 OBP .482 SLG .634 H 2654 HR 521 RBI 1839 홈런 1위 4회 타격 1위 6회
-디마지오 AVG .325 OBP .398 SLG .579 H 2214 HR 361 RBI 1537 홈런 1위 2회 타격 1위 2회

루스 이전 데드볼 시대를 지배했던 타자, 타이 콥은 은퇴할 당시 70여가지가 넘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인종차별, 관중폭행 등의 갖가지 물의를 빚었고, 덕분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시에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타이 콥, 배리 본즈, 윌리엄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은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질 못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독불장군 스타일이었으며, 팬들에게 조차 쌀쌀 맞았고, 팀 동료들에게도 외면 받았다. 그에 반해 디마지오, 맥과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는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리그 전체의 흥행요소에도 영향을 끼쳤다. 디마지오의 연속 안타 기록 당시에는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슈퍼 스타는 실력만으로 만들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디마지오에게는 절대적인 우아함과 기품있는 부드러움이 존재했다고 전해지며, 켄 그리피 주니어는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맥과이어에게는 압도적인 힘, 고전적이면서 전형적인 마초성이 존재했다.    

KBO에도 MLB보다 짧은 역사이지만 슈퍼스타들은 존재해 왔다. (물론 이들이 노벨 문학상 소설에서 언급 되지는 않았다.)

‘최초의 사나이’ 이만수는 강렬한 쇼맨쉽으로 초기 KBO의 흥행에 큰 도움을 줬으며, 이만수와 김봉연의 홈런 경쟁도 KBO 팬들에게 큰 흥미거리였다.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둔 최동원과 통산 ERA가 1.20에 달하는 선동열의 라이벌 구도는 ‘퍼펙트 게임’ 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야구천재 이종범의 활약에는 전국이 들썩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KBO의 흥행 암흑기가 찾아왔으나, 2003년 MLB의 새미 소사와 맥과이어의 홈런 경쟁을 방불케 하는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 경쟁이 KBO의 흥행을 주도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야구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순위싸움은 치열했지만, 스타의 부재가 뼈아팠다. 당대 최고의 타자였던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KBO에는 슈퍼스타라 불릴 선수가 없었다. 이승엽의 라이벌이었던 심정수는 극심한 하락세를 겪었고, 양준혁의 스타성은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느낌에 머물렀다. 2006년 괴물신인 류현진이 등장했으나, 아직은 신인이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야구의 위상은 뒤바뀌었다. 야구가 일약 국내 최고 흥행 스포츠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구단은 롯데 자이언츠였다. KBO 최초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의 화끈한 야구에 대부분의 야구 팬들은 매료됐다. 그 이후 한국프로야구의 흥행은 롯데가 주도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을 얻은 이대호는 전국구 스타가 되었고, 이대호는 자연스레 스타의 바로미터인 라이벌 관계도 김태균과 형성했다. 이후 김현수가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이대호가 떠나면서, 다시 한번 KBO는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를 겪는다. 김현수는 성적이 하락세를 탔으며, KBO로 복귀한 김태균은  홈런 타자라기보다는 출루머신에 가깝다. 그러나 2013년 마침내 슈퍼 스타의 잠재력을 갖춘 한 타자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NC 다이노스의 나성범이다.

2008년 진흥고를 졸업한 후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았지만(2차 4순위), 나성범은 프로 입단을 당장은 포기하고 연세대에 진학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연세대 시절 나성범은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 였으나, NC에 입단한 이후 타자로 전향했다. 김경문감독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어깨에 문제가 있었다. 나성범은 2009년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어깨를 다쳤고, 무리한 투구에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에이스 투수들이 과거에는 타자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나성범의 타자전향에 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성범도 좋은 타격실력을 보여주었다.  2012년 나성범은 퓨처스리그에서 16개의 홈런과 3할의 타율, 29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정교한 타격, 강력한 한방, 빠른 발, 수비 센스, 견고한 어깨를 뽐내며 5툴 플레이어로서의 장래성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하지만 2013년 나성범의 성적은 평범했다. 타율은 0.243에 그쳤고, 믿었던 홈런과 도루마저 각각 14개와 12개에 그쳤다. 안타도 98개를 기록하며 100안타를 채우지 못했다. OPS도 0.735로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다. 특히나 wRAA(리그평균득점대비생산력)에서 -4.47을 기록하며, 음수 값을 나타냈다. 득점 생산력이 리그 평균보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세대 최고 에이스 투수였던 나성범의 타자 전향은 실패로 끝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4년 나성범의 성적은 괄목상대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선수들이 겪는다는 2년 차 징크스,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는 나성범에게 없었다. 나성범은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14개였던 홈런은 30개로 크게 증가하면서 리그 7위에 올라섰다. 도루 역시 14개로 소폭 증가했다. 무엇보다 타율을 2할 4푼 3리에서 3할 2푼 9리로, 1할 가까이 끌어 올리며 컨택 능력을 많이 회복시켰다. OPS는 1에 가까운 0.997을 기록하며 리그 7위에 올랐다. 각종 세이버 스탯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k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에서는 리그 7위, wOBA(가중출루율)에서는 리그 9위, 2013 시즌 음수 값을 기록했던 wRAA는 34.74로 크게 증가하며 리그 8위에 올라섰다. 

*괴물로 변신한 2년차 나성범   

나성범은 2014년 대기록을 하나 작성하기도 한다. 2014년 6월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나성범은 마지막 6번째 타석에서 또 홈런을 치는 바람에 사이클링 히트 기회가 무산 됐다. 그러나 6득점을 기록하면서 KBO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7월 13일에도 안타, 3루타, 홈런을 쳐냈으나, 2루타를 만들어 내지 못하며 사이클링히트 도전에는 다시 실패했다. 

그러나 2014년 나성범의 타격기록은 아름다운 숫자의 연속이다. 2014년 나성범은 강타자의 지표라는 3할-30홈런-100타점과, 3할 타율과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만들면서 이른바 3-4-5(한없이 6에 가까운)를 기록했다. 2013시즌 2-3-4를 기록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2014년 나성범이 남긴 아름다운 숫자의 향연(인포그래픽: NC 다이노스)

다만 그의 성적에는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바로 2014시즌이 사상 초유의 타고투저 시즌이였다는 점이다. 규정타석을 채운 55명의 선수 중 36명이 3할의 타율을 넘기며, 3할을 못 친 선수를 찾는 게 더 어려웠던 시즌이다. 무엇보다 나성범 본인의 타율증가와 함께 찾아온 BABIP의 가파른 상승도 2015 시즌을 불확실하게 하는 요소다. 

나성범은 2013시즌 BABIP 0.279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4시즌 나성범은 리그 4위에 해당하는 0.397의 BABIP을 기록했다. 갑작스런 BABIP의 증가는 극단적으로 당겨 치면서 어퍼스윙을 하는 타자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자신의 스윙스타일을 포기하고 스프레이 히터로 변신했을 때, 혹은 타자의 타구가 정말 기가 막히게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만 가는 운 좋은 시즌이나 그렇다. 그렇다면 나성범의 경우 과연 전자에 해당할까, 후자에 해당할까? 

물론 이것에 관한 결론은 당장 낼 수 없다. 타자의 BABIP의 경우 꾸준하게 누적되면서 어느 한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성범은 이제 겨우 프로 1군 2년 차에 불과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어느 쪽이 나성범의 진짜 BABIP, 타격 실력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2014년 나성범은 슈퍼 스타의 첫 걸음마를 뗐다. NC 다이노스 구단 최초로 골든 글러브(외야부문)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으면서 KBO 슈퍼 스타 대관식에 한 걸음 올라섰다. 슈퍼 스타를 향한 엘리트 코스를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과정은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5툴 플레이어로서의 다재다능함과, 훤칠한 외모, 짐승 같은 피지컬 등 외모와 재능면에서는 슈퍼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실력만으로 슈퍼스타가 될 수는 없다. 그의 뛰어난 야구실력이 부각될수록 이면의 모습도 자주 부각되고 노출될 것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슈화 되고 주목 받을 것이다. 은퇴한 농구계의 국보급 스타 서장훈은 ‘노블레스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산다.’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훌륭한 야구 실력과, 준수한 외모를 동시에 갖춘 나성범의  슈퍼 스타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거기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의 선수로 성장하는지에 따라 NC 다이노스와 KBO의 미래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