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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위대했던, 그리고 위대한 마무리 임창용의 200세이브

2015-04-01 수, 23:08 By KBReport

지난 3월 31일, 임창용은 시즌 첫 세이브이자 자신의 KBO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김용수(1999년), 구대성(2007년), 오승환(2011년)에 이은 KBO 4번째 200세이브. 김용수에 이은 역대 2번째 100승-200세이브이기도 하다. 팔꿈치 부상으로 두 번의 수술과 재활을 했고, 일본과 미국 진출로 6시즌의 공백이 있었던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엄청난 기록이다. 

KBO 통산 200세이브,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한, 위대했던, 그리고 위대한 마무리 임창용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애니콜’, ‘고무팔’ - 괴물 같은 이닝 소화력


585경기 1502 1/3이닝 ERA 3.32, 109승 70패 200세이브.

임창용이 KBO에서 세운 위대한 업적이다. 일본 생활 5년, 미국 생활 1년으로 총 6시즌이나 한국 무대를 떠나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임창용은 올해로 KBO 15시즌째를 맞고 있는데, 이 중 임창용이 세이브를 올릴 수 있는 풀타임 마무리 투수로 뛰었던 해는 6시즌(2015시즌 제외)에 불과하다. 이 여섯 시즌에서 임창용이 올린 세이브는 무려 195개. 풀타임 마무리로 뛰었을 때, 시즌당 평균 32.5세이브를 올린 것이다. 

혹자는 이 성적이 그렇게 대단한 성적은 아니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풀타임 마무리로 뛰었을 때의 평균 세이브 개수만 본다면, 오승환(6시즌 238세이브, 시즌당 평균 39.7세이브)보다는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창용이 마무리 투수로 뛴 6시즌에서 던진 이닝 수를 본다면 ‘괴물 같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임창용은 풀타임 마무리로 뛴 6시즌 중 3시즌(1997~1999)에서 10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이 세 시즌에 임창용이 던진 평균 이닝은 135.8이닝. 선발 등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도 3시즌 연속으로 규정이닝을 넘긴 것이다. 선발 등판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선수가 3시즌 연속 규정이닝을 달성한 것은 KBO뿐만 아니라, 미국 MLB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기록이다. 당시 임창용이 왜 ‘애니콜’, ‘고무팔’ 등의 별명을 달고 다녔는지 알 수 있다.

한 가지 참고하자면, 오승환의 풀타임 마무리 시즌 중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시즌은 79 1/3이닝을 던진 2006시즌이다. 임창용의 풀타임 마무리 6시즌간의 평균 이닝은 101.2이닝이며, 오승환의 풀타임 마무리 6시즌간의 평균 이닝은 60.9이닝이다. 평균 40이닝 정도의 차이.

또 한 가지 사실. 임창용의 풀타임 마무리 6시즌간의 경기당 평균 이닝은 1.71이닝. 오승환의 1.10이닝과는 무려 0.6이닝, 즉 아웃카운트 2개 정도의 차이가 난다. 큰 차이가 아닌 듯 하지만, 마무리 투수에게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전, 그리고 또 도전 – 멈추지 않았던 과감한 도전 정신

임창용이 보여준 이닝 소화력은 역대 마무리 투수들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임창용은 단순히 이닝 소화력이 뛰어났던 마무리가 아니다. 그가 많은 선수들에게 존경 받는 선수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불굴의 도전 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임창용은 2005년 후반기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계속해서 던지고, 또 던지며 팔꿈치에 무리가 온 것이다. 수술 이후 임창용은 2006시즌 2이닝을 던지는데 그쳤고, 2007시즌에는 100이닝 이상을 던졌으나 평균자책점 4.90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년간의 부상과 부진으로 모두가 ‘임창용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때, 임창용은 “정체된 나를 깨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과감한 도전을 시작했다. 일본 무대 진출을 선언하고, 야쿠르트와 3년간 연봉 1500만엔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외국인선수 최저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KBO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선수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초라한 금액, 말하자면 ‘헐값’이었다. 하지만 임창용은 흔들리지 않고 도전했고, 5시즌동안 ERA 2.09, 128세이브를 올리며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다. 2010시즌을 앞두고 2+1년 최대 15억엔의 대박 계약을 체결, 금전적인 보상도 뒤따랐다.

임창용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 37살, 일반적인 경우라면 은퇴를 고민할 나이에 임창용은 다시 한 번 과감하게 도전했다. 2012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시카고 컵스와 2년간 최대 5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루키 리그부터 시작해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쳐 시즌 막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으며 꿈을 이뤘다. 2014시즌 개막을 앞두고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으며 국내 복귀를 결정, 한미일 동시 세이브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포기를 모르는 도전 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200세이브, 그 이상을 바라보는 임창용

임창용은 KBO 통산 200세이브를 넘어 300세이브를 바라본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해 메이저리거라는 꿈을 이룬 임창용. 우리 나이 마흔에 KBO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그는 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 임창용이 KBO 200세이브 달성 이후에 외친 말은 “여기까지”가 아니라 “300세이브”였다. 

300세이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3시즌을 더 뛰며 평균 33세이브 이상을 거둬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느덧 불혹, 해가 갈수록 몸은 둔해지고, 공은 느려질 것이다. 누군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이루지 못할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창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