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4

잠실

삼성

7 - 6

롯데

잠실

삼성

7 - 6

롯데

잠실

삼성

7 - 6

롯데

잠실

삼성

7 - 6

롯데

STAT BUZZ
 KBR Friends

[역사카툰] '백정 사위' 이장곤, 아내를 지켜라

2017-10-30 월, 01:48 By 케이비리포트

[史(사)람 이야기⑫] 도망자 시절 혼인한 '백정'신분 아내와의 의리를 지킨 홍문관교리 이장곤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12화: 백정사위 이장곤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 조선시대 '백정'의 처지는?


백정(白丁)이란 중국 수나라 시절 등장한 용어로 말 그대로 일반 백성을 의미했다. 군역이나 직역을 진 가호를 정호(丁戶)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제외된 가호를 백정으로 불렀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백정이란 신분이 있었다. 이들 역시 엄연한 양민 신분으로 국가로부터 역을 부여받지 않은 채 농업에 종사한 일반 백성들이다. 

일반 백성들과 동화되지 못한 북방 여진족 출신의 재인(광대)이나 화척이 있었는데 이들은 호적이나 일정한 직역이 없이 전국을 떠돌며 유랑 생활을 했다. 고려 후기 들어서, 이들 여진족 후예는 왜구를 가장해 민가나 관가를 노략질하여 고려 민중으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서 조정(朝廷)에서는 유랑민족들을 철저히 관리하였는데, 이들로 하여금 도살이나 광대, 유기(柳器: 버들가지로 만든 생활용품)를 제조 하도록 했다. 

세종 임금은 이들을 애처롭게 여겨 양인의 신분을 주고 호적을 만들어 주며 떳떳한 조선 백성으로 살도록 했다. 즉, 일반 양민의 칭호인 '백정'이란 이름을 붙어주었으니, 오늘날 백정의 의미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유랑민이었던 양수척 무리들은 세종대(世宗代)에 이르러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정착생활을 했지만 일반 양민들은 이들을 '신(新)백정'이라 부르며, 천민으로 대우하고서는 심한 멸시를 가했다. 

1809년(순조 9년)에 개성부의 한 백정이 혼인을 할때 관복을 입고, 일산(日傘: 햇빛을 가리는 도구)을 받쳤다고 해서 개성부 양민들이 이 백정을 난타하고 집을 부수었다. 

심지어 양민들은 관청에 몰려가 백정을 엄히 다스리지 않는다하여 개성부 관아에 돌을 던지며 항의하였으니, 백정의 처지가 어떠한지 잘 알려주는 사례다. 

김홍도 풍속화 '노상송사' 중 사또에게 송사하는 백정의 모습(빨간칸) 
▲  사또에게 송사하는 백정의 모습(빨간칸). 김홍도의 풍속화인 '노상송사'. 소장처: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
ⓒ 김홍도풍속화

성대중의 아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에 따르면 백정 가운데 고리백정이 소를 잡는 백정보다 더 천시받았고 그 때문에 주현에서 사형시킬 죄수가 있으면 그들에게 형 집행을 맡기기도 하였다고 한다.(연경재집 권59, 楊禾尺) 

조선 후기에 들어 영,정조 임금이 '민국정치(民國政治: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자, 민(民)의 의식이 이전보다 한층 성장했는데 천한 백정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도인 '노상송사'에 나오는 백정이 고리백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당한 처사에 맞서 소송을 하는 모습에서 한층 의식이 성장한 이들의 행태를 발견할 수 있다. 

백정들의 이러한 모습은 다음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는 백정이다. 그렇지만 가장 두려워할 만한 자도 백정이니, 그들이 가장 천하기 때문이다. 문경의 공고(工庫)에 소속된 종이 백정을 구타하였는데, 백정이 죽자 재판을 하여 그를 사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관아에서 종의 편을 들까 염려한 나머지 온 군내의 백정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날을 세우고 몰려와서는 마치 자신들의 원수를 갚듯이 하여, 기어이 직접 그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고 관문에서 시끄럽게 굴었다. 

이에 관아에서 간곡히 타이르니 그제야 돌아갔다."


지방 관아에 소속된 종이 백정이 구타를 당해 죽이는 일이 발생하자 백정들이 억울하게 죽은 동료를 위해 집단행동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관노비에게 맞아 죽을 만큼 백정의 처지는 열악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이런 백정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비로소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차별이 무너졌다고 해서 사회적인 차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23년에는 형평운동을 주창해 계급적 투쟁을 지속하였으니, 백정들은 우리 역사속에서 가장 고난한 길을 걸어야 했던 부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국사 편찬 위원회 <우리역사넷>, 다시 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著), 청성잡기 (성대중 著), 연경재집 (성해응 著)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17세 '장원급제' 박호, 굵고 짧았다 ) 

[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프로야구/MLB 객원필진 지원하기[kbr@kbreport.com]

[기록 출처: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








<저작권자 ⓒ 프로야구 통계미디어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