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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300홈런 이호준, 인생은 아름다워!

2015-06-11 목, 01:08 By KBReport

2013년, 영원히 날 것 같던 황금 독수리 송지만이 은퇴했다. 송지만은 통산 311개의 홈런(역대 6위)과 1030타점(역대 9위)을 기록했으나, 선수 시절 타이틀 홀더가 돼본 경험이 1999년 3루타 1위, 2000년 장타율 1위가 전부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무관의 제왕, 소리 없는 강자라 불렀다. 그러나 송지만의 야구 인생은 오늘 얘기할 이 남자, 이호준의 그것에 비한다면 꽤나 화려한 편이다. 송지만은 26명뿐인, 2회 이상 외야수 골든 글러브를 받은 선수 중 한 명이며(2000, 2002년 수상), 00년에는 미스터 올스타에 뽑히며, 올스타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호준은 2004년 타점 부문에서 타이틀 홀더가 된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기록이 없다.(1경기 6연타석 볼넷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긴 하다.) 이호준이 현재 기록한 통산 타점은 1099타점.(2015년 6/18일 기준)이미 은퇴한 김동주(1097타점)을 넘어서 타점 통산 4위로 올라섰다. 홍성흔이 1085타점으로 바짝 쫓고 있지만 현재 페이스는 이호준에 비할바가 아니다. 여기에 홍성흔의 300홈런 달성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분명 이호준은 역대급 타점 기록을 남길 선수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야구인생은 화려함,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호준은 단 한번도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는데, 만약 이번 시즌에도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데 실패한다면, 역대 최초로 300홈런 달성자 중 골든 글러브 수상 경험이 없는 선수가 된다. 

이호준이 프로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며 주로 소화한 포지션은 1루수. 당시 1루 골든 글러브는 이승엽의 독식이었다.(1997~2003년 7년 연속 1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이호준은 2003년 36홈런(시즌 4위), 102타점(시즌 5위)이라는 리그 정상급 성적을 남겼지만, 이승엽의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소리 없이 묻혔다. 골든 글러브는 당연히 이승엽의 몫이었다.

2004년 30홈런(시즌 3위), 112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커리어 처음으로 타점 부문에서 타이틀 홀더가 됐다. 그러나 골든 글러브는 1루수로 포지션을 전향한 양준혁에게로 넘어갔다. 
2013년 NC로 이적한 후, 8년 만에 다시 20홈런을 기록하며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 글러브를 노렸지만, 그 해 지명타자 골든 글러브는 최고령 타격왕이 된 이병규가 수상한다. 2014년 역시 23홈런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최고령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이승엽이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다.(역대 최다 골든 글러브 수상)

그의 야구 커리어는 불운함에 가깝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양준혁, 야구는 이종범, 그리고 인생은 이호준 처럼.’이라는 말을 한다.(물론 우스갯소리이지만.) 불운함에 가까워 보이는 이호준의 야구 인생은 어떻게 반전을 이루어 냈을까? 그의 야구 인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타이거즈의 전통 팜이라고 불리던 광주일고 출신인 이호준은 대학 팀에 진학하지 않고 94년 바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다. 시작은 투수였다. 그러나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94년 이호준은 투수로 8경기에 나서서 12.1이닝을 던지면서 10.22라는 참혹한 ERA를 기록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처음부터 꼬였다. 김재현에게 20번째 홈런을 허용하며, KBO 신인 최초 20-20을 만들어주는 조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결국 1996년 타자로 전업 후, 본격적으로 타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1998년, 이종범이 떠나고 홍현우가 부진했던 해. 이호준은 타이거즈 타선을 혼자 이끌다시피 하며, 0.303의 타율과 19홈런 77타점을 기록한다. 그러나 역시 이 해에도 이호준은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다. 다음 해에도 16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해태의 재정난이 심화되면서, 투수진은 붕괴 됐고 이호준은 트레이드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진: SK와이번스

20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해. 이호준은 정든 고향팀을 떠났다. SK 투수 성영재와 트레이드 된 것. 그러나 새로운 팀에서의 적응은 순탄치 못했다. 2000년, 2001년 각각 61경기와 80경기 출전에 그친데다가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2년 연속 타율 2할 3푼을 기록.) 2001년에는 8개의 홈런을 기록하는데 그치면서, 3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을 더 이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23홈런을 기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간 연평균 약 28개의 홈런과 88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나 다름 없었던 이 당시에, 그는 이승엽과 양준혁 같은 괴물들에게 밀려서 단 한 개의 골든 글러브도 수상하지 못했다.

2007년 시즌이 종료된 후 이호준은 대박을 터트린다. 4년간 최대 34억의 계약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다.(05년 심정수 4년 60억)그러나 2008년 그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린다. 팀내 최고 연봉 선수였음에도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절치부심하며 맞이한 2009년 16홈런 55타점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한다.

2012 시즌을 마치고, 생애 2번째 FA가 된 이호준은 12시즌을 몸담았던 SK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3번째 팀은 신생팀 NC 다이노스 였다. 그의 몸값은 3년 최대 30억원.(그 해 김주찬 4년 50억)그의 가치는 처음 FA때보다 분명 떨어졌다. 그의 나이에 비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이호준은 대반전을 만들어냈다.

사진: NC 다이노스

이적 첫 해 이호준은 8년 만에 다시 20홈런 고지에 올라섰고, 2014년에도 23홈런을 기록했다. 여기에 팀의 주장으로 책임감을 짊어져야만 하는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NC다이노스는 역대 신생팀 중 가장 빠르게 가을야구를 경험한 팀이 됐다. (NC 창단 2년 만에) 여기에 올 해 이호준은 64타점을 기록하며 통산 타점 기록에서 송지만을 넘어섰다. (6/10일 기준 1096타점) 그리고 300홈런에 단 한 개의 홈런만을 남겨놓고 있다.  

사진: NC 다이노스

배 나온 아저씨, 22년 프로 인생 동안 단 한 개의 타이틀을 차지한 보통의 선수. 조용히,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네 보통의 아버지. 그래도 야구 인생은 아름다웠다. . KBO 역대 8번째 300홈런 타자이자,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타점을 기록한 선수로 남을 것이다.  그는 이제 불혹에 접어들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보통의 인간’ 이호준의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다.

이호준은 언제인가 프로는 화려함 뒤에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아름답고 찬란한 황혼기는, 보통의 인간으로 살아온 쓸쓸함을 모두 곱씹었기 때문에 찾아온 날들이 아니었을까.  

정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