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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이정후를 지켜보는 '엠스플'의 불편한 시선

2017-03-24 금, 22:50 By 이정민
축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활동중인 차두리는 선수시절 '차미네이터'라는 친숙한 별명과 왕년의 국민적 축구영웅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이름값으로 누구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유의 피지컬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닮은 선수 본인의 서글서글한 성격이 합쳐져 보는이까지 유쾌하게 만드는 에너지였다.

그렇게 유쾌했던 차두리가 은퇴를 앞두고 참가한 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 11 상을 수상할며 소감을 남길때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가 있다. 

"한국 축구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를 해서 무언가로 인정을 받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자리가 되서 굉장히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항상 말을 아끼던 그가 마지막에 꺼낸 한마디는 무겁게 다가왔다. 모두들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남다른 조건이 한편으로는 선수생활 내내 부담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국가대표 은퇴경기 당시 14년만의 부담감을 벗던 차두리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 은퇴 경기 후, 기념행사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던 차두리. ⓒ KFA

이처럼 대스타의 2세로 태어난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으려면 견뎌야하는 부담감이 보통이 아니다. 대부분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해 '꽃길'만 걸을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수 생활 내내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다닐 것이고 '레전드'였던 아버지가 세워 놓은 이정표를 따라잡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에서도 차두리처럼 누구도 생각지 못한 부담감과 싸어야 하는 선수가 있다. 이제 막 프로에서 첫 발을 떼기 시작한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정후의 아버지는 프로야구 최고의 톱타자였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정후 역시 아버지와 같은 톱타자 스타일의 선수다. 여러모로 운명처럼 아버지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범근 못지 않은 아버지인 이종범의 아들이기에 이정후가 느낄 부담감 역시 차두리가 느낄 그것 못지 않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도 은퇴 경기때 아이처럼 울게 만들어버린 그 부담감의 무게를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이정후가 견디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 사람은 프로 생활내내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KIA 타이거즈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시범경기 중계에서 MBC SPORTS+(이하 엠스플)의 중계 태도는 아쉬움이 남는다. 3월 21일과 22일 고척돔에서 양일간 넥센과 롯데의 시범경기를 중계한 엠스플은 이정후를 전면에 내세워 중계를 진행했다. 

21일에는 선발 출전도 하지 않은 이정후를 끊임없이 비추었다. 대타 출전을 했을때는 짧게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그의 간결했던 스윙을 극찬하며 공수교대가 끝난 뒤에도 중계진은 이정후의 스윙만을 이야기하며 공격이 진행되던 롯데의 선수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예 22일에는 해설자로 이종범 해설위원을 배치하며 그야말로 한 술 더 떠는 진행을 보여줬다. 이정후는 4안타를 치며 만점활약을 했지만 이런 배치가 부담 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종범 해설위원은 웃음 마저도 자제하는 듯 보였다.

▲ 롯데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서 4안타를 쳤지만 활짝 웃지는 못한 이정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 넥센 히어로즈

문제는 이런 중계로 비난을 받는 대상이 엠스플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엉뚱한 곳으로 화살이 향하는 부분에 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저 야구를 했을뿐인 이정후는 때아닌 금수저 논란에 휩싸여야만 했고 집에서 이정후에게 수저를 제공했을뿐인 이종범 해설위원은 졸지에 아들에게 금수저를 물린 부모가 되고 말았다. 책임은 엠스플에 있지만 책임을 지는 대상은 이종범-이정후 부자인 행태가 되고 말았다.

물론 엠스플이 다양한 컨텐츠로 방송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부분은 인정할 부분이다. 그로인해 엠스플은 10년 넘게 시청률 1위를 달리며 KBO리그 대표 야구 중계방송사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이 많을수록 책임은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정후같은 한국야구의 미래가 될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할 때는 조금 더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를 사랑하는 최고 방송사다운 성숙한 중계방송이 필요하다. 20년 정도 지났을때 이정후의 은퇴경기에서는 그가 부담감을 느껴 힘들었다는 눈물대신 주위에서 도와준 덕에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굳이 이제 시작인 이정후에게 집중하지 않더라도 이정후는 충분히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엠스플이 애써 이야깃거리를 찾으려 '오버'하지 않아도 야구에는 충분히 이야기할거리가 많다. 다가오는 시즌에는 과거처럼 담백한 중계로 팬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떨지, 엠스플의 초심도 충분히 재밌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