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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이상화·정영일, 대기만성 꿈꾸는 청룡기 영웅들

2018-01-17 수, 10:06 By 이정민
12년전 청룡기 결승서 역사에 남을 명승부 남겨

대기만성 꿈꾸는 이상화·정영일

▲ 88년생 동갑내기 투수 이상화(좌,kt 위즈)와 정영일(우,SK 와이번스) ⓒ kt 위즈, SK 와이번스

현재 KBO리그에는 88년생 스타들이 유난히 많다. 한국나이로 31세, 물론 88년생들이 현재 선수로 전성기를 맞이할 나이라지만 다른 나이대에 비해 스타 선수 비중이 유독 높은 편이다. 

SK의 김광현이나 KIA의 양현종 롯데의 손아섭처럼 88년생 선수들은 대부분 각 구단을 상징하는 선수들로 자리잡고 있다. 88년생 선수들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에 섰던 기억도 있다.

당시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뿐만 아니라 국내 고교야구 대회에서도 전국적으로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었다. kt의 이상화와 SK의 정영일 역시 당시 전국 무대를 주름잡던 88년생 투수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기 선수들처럼 많은 연봉을 받거나 FA 대박 계약을 터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FA 대박은 고사하고 이들은 프로 생활 내내 1군 무대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 동료 선수들과 경쟁을 벌여야 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고교시절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의 모습은 생소한 느낌이다. 고교 시절 경남고의 이상화와 광주진흥고의 정영일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전국구 에이스들이었다. 현재 프로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양현종(광주동성고)이나 김광현(안산공고)등의 선수들과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들의 고교시절 최고의 장면은 그 해 청룡기 결승전에서 나왔다.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구위를 자랑했던 정영일의 진흥고와 뛰어난 제구와 경기 운영능력으로 연고팀 롯데의 1차지명이 확실시되던 이상화의 경남고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두 투수들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승부는 연장 16회까지 이어졌고 우승기는 16회말 집중력을 발휘한 경남고가 끝내기 안타를 치며 가져왔다. 경남고 에이스 이상화는 14회 1아웃까지 162개의 공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하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지칠대로 지친 14회 동기생 이재곤에게 마운드를 넘기면서도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투혼을 찾아볼 수 있었다.

▲ 2006년 61회 청룡기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남고. MVP 이상화 이외에도 현재 프로무대에서 활동중인 신본기,한동민,장성우등 굵직한 선수들이 보인다. ⓒ 조선일보

그 이상화에게 유일한 실점을 안겨준 것이 바로 진흥고 선발투수 정영일의 솔로홈런이었다. 타석에선 홈런으로 팀의 유일한 득점을 뽑아낸 정영일은 마운드에서 222개의 공을 던지며 연장 16회 끝내기가 나오던 순간까지 홀로 마운드를 지켜냈다.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초고교급 투수 정영일의 진가가 발휘된 경기였다.

당시 고교야구 이상의 수준높은 경기를 보여준 양 팀 에이스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들은 이후 승승장구 하며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던 이상화는 연고지 팀인 롯데의 1차지명을 받고 프로에 뛰어들었다. 해외진출이 예상되던 정영일은 11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LA 에인절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로에서 고교시절의 기대치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롯데에 입단하고 퓨쳐스리그 에이스를 꿰차며 미래의 에이스로 평가받던 이상화는 부상과 부족한 구위등 여러가지 이유들로 1군 무대에 자리잡지 못했다. 제2의 손민한이라 기대받았지만 팀을 떠나게 된것만 손민한과 같았다.

정영일의 경우 고교시절 혹사로 인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입단 당시에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TOP 10에도 이름을 올리며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건강하게 공을 뿌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정영일은 미국에서 상대팀 타자들이 아닌 본인의 통증과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이들은 이제 우리나이로 서른살을 넘긴 아저씨가 되었다. 그 사이 이상화는 고향팀 롯데를 떠나 kt의 유니폼을 입고 있고 정영일의 경우 국내로 돌아와 SK의 지명을 받고 KBO리그에 데뷔했다. 그 사이 이들의 친구들은 리그를 주름잡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없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공을 던졌다. 1군 무대에는 통하지 않는 구위라 평가받던 이상화는 kt 이적 이후 커터를 장착하며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지난 해 kt에서 패전조로 시즌을 시작한 이상화는 필승조까지 승격되며 시즌을 끝마쳤다. 김재윤이 부상을 당했을 당시 임시 마무리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성기를 예고했다.

SK의 지명을 받고 상무에 다녀온 정영일은 2016시즌 팀 불펜에서 알토란같은 역할을 해냈다. 묵직한 구위를 앞세워 SK 불펜진의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2017시즌에는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당한 부상때문에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정영일은 착실하게 재활을 완료해 공을 무리없이 던지는 몸상태를 만들어냈다. 정영일은 지난 해 부진했던 SK 불펜의 힘을 보탤 기대 자원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고교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스타 플레이어가 프로 무대에서 고전하는 경우는 사실 흔한 일이다. 난다 긴다하던 고교무대의 스타들이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상화와 정영일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군 마운드에 올라서는 선수가 되었다.

12년전 청룡기의 밤하늘을 유독 빛나게 수놓던 이상화와 정영일, 야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두 청룡기 스타가 프로 무대에서 더 높게 날 수 있을지 2018시즌 이들의 투구를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