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4

잠실

삼성

7 - 6

롯데

(승) 이호성 (패) 정수근 (세) 임창용 (홈런) 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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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BUZZ
 STAT 리포트

KIA 한기주의 "천일동안"

2015-07-24 금, 00:42 By KBReport

▲ '1064'일만에 1군 마운드로 돌아온 한기주 (사진: KIA 타이거즈)

지난 7월 16일, 한기주가 돌아왔다. 2012년 8월 16일 잠실 LG 트윈스전 이후 1064일만이다. 1064일 전의 한기주는 팀이 4대2로 끌려가던 6회말 마운드에 올라 12명의 타자를 상대해 4피안타 2사사구 1피홈런 2탈삼진 4실점 3자책의 부진한 투구를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단순히 부진했을 뿐 아니라 7회말 8대2 상황에서 2아웃 이후에 오지환을 상대로 연속해서 볼을 던지다가 몸 쪽으로 연달아 볼을 던져 4구째에 오지환의 엉덩이를 맞혀 빈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력에서도 매너에서도 졌다는 비판 속에서 마운드를 내려 온 한기주는 이후 긴 재활에 돌입하게 된다. 

1군에서 자취를 감추고 1064일이 지나 한기주는 아이러니하게도 3년 전 상대팀 감독이었던 김기태 감독의 배려 속에서 마운드에 다시 올랐다. 똑같은 상대팀, 유니폼을 갈아입은 상대팀 감독, 달라진 승부의 결과와 투구 내용, 여기에 달라진 것은 또 하나 더 있었다. 

과거에는 150km/h을 우습게 기록하던 그의 구속이다. 1064일 만에 마운드에 올라 던진 한기주의 최고 구속은 142km/h에 머물렀다(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2012년 8월에도 한기주의 구속은 부상으로 인해 140km/h 초반대에 머물렀다.)

▲ 역대급 혹사 겪은 2006년의 한기주

아직도 최고액인 10억원의 신인 계약금은 당시 그에 대한 기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 KIA 타이거즈)

한기주의 혹사는 고교 때부터 시작됐고, 프로 첫 해인 2006년 절정을 치달았다. 당시 치열한 4위 싸움을 벌이고 있던 KIA는 서정환 감독 주도 하에 잡을 경기는 모든 투수를 다 동원해서 잡는 식의 운영을 했다. 이당시 5분 대기조 처럼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한기주와 신용운, 윤석민이었다. 

특히, 한기주의 혹사는 8월 들어 절정을 치달았다. 8월 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2이닝 동안 6실점으로 부진한 투구를 한 이후 불펜으로 전환한 한기주는 이후 시즌 종료 때까지 구원투수로만 등판했다.

8월 12일 이후 한기주는 25경기에 등판해 56 2/3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0.95의 평균자책, 1할2푼2리의 피안타율, 3할5푼4리의 피OPS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해 팀이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KIA에 믿을만한 선발투수가 그레이싱어와 김진우 단 2명뿐이었기에 서정환 감독은 승기를 잡았다 싶으면, 한기주를 2이닝 정도 길게 던지는 불펜투수로, 신용운(부상에서 막 돌아와 37 2/3이닝 동안 0.72의 평균자책을 기록)과 정원(38 1/3이닝 동안 1.88의 평균자책)을 셋업맨으로, 윤석민(전반기에는 선발로 뛰었으나 마무리 장문석의 부진으로 후반기부터는 마무리로 활약하며 19세이브를 거뒀다)을 마무리로 기용하며 뒤를 잠갔다. 

이런 운용으로 서정환 감독의 KIA는 선발투수 평균자책점은 리그 5위로 평균보다 못했으나,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은 2.97점으로 리그에서 가장 뛰어났다. 당시 무적 불펜을 자랑하던 삼성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인 3.32점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수치였고, 리그에서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불펜이 위력적인 팀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용은 투수들의 생명을 단축시켰을 뿐이다. 정원은 이 해에만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고 부상을 이겨내지 못해 다음 시즌 39이닝 동안 5.92의 성적만을 기록한 이후 1군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고, 신용운은 2007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73의 부진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부상으로 인한 긴 재활로 2차 드래프트 보호 명단에서 제외, 현재는 삼성에서 재활에 성공해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했다. 윤석민은 다행히 선발로 전환해 불펜 혹사에서는 벗어났지만, 한기주는 여전히 서정환 감독의 가혹한 불펜 운영의 피해자로 남아 있다.

2006년 8월 12일부터 구원투수로 전환한 한기주는 틈만 나면 마운드에 올랐다. 8월까지는 어느 정도 휴식일을 두고 등판했지만,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 9월에는 연투를 밥 먹듯이 했다. 9월 1일 1 2/3이닝을 투구하고 다음 날 3이닝 투구, 9월 13일 2이닝, 9월 14일 3 1/3이닝을 투구하고 불과 하루 쉬고 3이닝 투구, 그리고 다음 날 치러진 더블헤더 2차전에서 2이닝 투구, 즉 5일 동안 4일 마운드에 올랐고, 총 10 1/3이닝을 투구한 셈이다. 

혹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월 20일 3이닝 투구 후 하루 쉬고 9월 22일 2이닝, 9월 23일 3이닝 투구, 9월 27일 3이닝 투구 후 바로 다음 날 2/3이닝 투구, 가장 압권은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4경기 연속 등판이다. 

내용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9월 30일 1 1/3이닝을 던진 한기주는, 휴식일 없이 바로 10월 1일 더블헤더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등판해 각각 1 2/3이닝, 2 1/3이닝을 던졌다. 2일 연속 등판 게다가 더블헤더 경기에 모두 등판해 많은 이닝을 소화했지만, 휴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한기주는 바로 다음 날 치러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롯데를 상대로 3이닝 동안 55개의 공을 던졌다.

한기주가 대단한 것은 9월부터 41 2/3이닝을 던지며 웬만한 선발투수보다 더 많은 공을 던졌음에도 1.08의 평균자책과, 0.77의 WHIP을 기록한 점이다. 같은 기간 삼성의 마무리 오승환은 15 1/3이닝을 던졌으며, 신인으로 프로에 뛰어들자마자 리그를 정복한 류현진은 38이닝을 던졌다. 당시 9월부터 한기주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구원투수는 1명도 없으며, 선발투수까지 포함하더라도 두산의 원투펀치 에이스, 리오스(44 1/3이닝)와 랜들(43 1/3이닝) 2명만이 한기주보다 불과 3이닝 정도만을 더 던졌을 뿐이다. 


▲ 아픈 어깨, 아픈 팔, 아픈 손가락 그래도 버틴 한기주

한기주에게 2006년 9월처럼 압도적인 피칭을 보인 시기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짧은 시기에 그렇게 많은 공을 적절한 휴식 없이 던진 한기주가 멀쩡하게 150km/h을 넘는 강속구를 계속해서 던지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한기주는 이후 2년간은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7년에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70 1/3이닝 동안 2.43의 평균자책 25세이브를 거뒀고, 2008년에는 1.71의 평균자책과 26세이브를 거뒀다. 그러나 2006년 8월 이후의 위력적인 투구는 재현하지 못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부진한 투구로, ‘속이 꽉 찬 남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만을 얻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한기주가 팀에 도움이 되는 투구를 한 것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단 3시즌이다. 역대 최고의 재능으로 손꼽히며 아직도 깨지지 않은 10억의 계약금을 받은 투수답지 않은 초라한 커리어다. 결국, 2006년 겨우 4위 턱걸이를 하겠다고 짧은 기간 혹사시킨 것이 한기주에게 악영향을 준 셈이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통증 때문에 4점대의 평균자책에 그쳤고, 2011년과 2012년에도 각각 30이닝 이상 투구하지도 못했다. 

수년간 지속된 KIA 타이거즈의 암흑기동안 한기주는 잊혀진 이름이나 다름없었다. (사진: KIA 타이거즈)

결국, 5시즌 동안 한기주는 자신의 이름값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 입단 동기인 류현진이 선동열 이후 최고 투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프로 데뷔 이후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가버린 류현진이 어깨 수술이라는 난관에 봉착한 올시즌에  한기주가 재활을 마치고 마운드로  복귀한 것도 드라마틱하다.) 

심지어 지역 내 라이벌 고등학교 핵심선수이자 입단 동기였던 강정호(강정호는 입단 시에 라이벌을 묻는 질문에 ‘한기주’라고 답하기도 했다)도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 당시에는 가장 주목 받았던 선수가 현재는 팔꿈치, 손가락 인대, 오른 어깨 회전근에 칼을 대고 긴 재활 끝에 간신히 마운드에 섰다.

           160Km에 가깝던 강속구는 이제 없다. 한기주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가? (사진: KIA 타이거즈)

이제는 동기들에 비해 너무나도 뒤진 상황이지만, 아직 한기주의 야구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1064일 만에 등판한 한기주는 4명의 타자를 맞아 3개의 공만을 던져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았다. 채은성에게 내야안타를 맞았지만, LG의 4번 타자 히메네스와 5번 타자 정의윤을 평범한 뜬공으로 잡았고 대타로 나온 신예 이민재를 3구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최고 구속은 142km/h에 머물렀지만, 한기주의 야구 인생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어느덧 29살의 나이, 내년이면 30살을 맞는 한기주가 다시 마운드에서 자신이 현재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진다면, KIA팬들에게는 승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한기주는 복귀전 이후, 7월 22일 삼성전, 7월 24일 롯데전에 등판 2.1이닝 동안 2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신희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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