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2015 투수 4대천왕, 골든글러버는 누구?
2015-08-11 화,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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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FIP, WAR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로 볼때 올시즌도 최고의 투수는 밴헤켄이다.(사진: 넥센 히어로즈)
최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의 수상 기준이 바뀌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소위 클래식 지표로 분류되는 승리-평균자책점(ERA)-삼진이 사이영상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 같은 소위 세이버 메트릭스 지표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14시즌, 펠릭스 에르난데스(15승 ERA 2.14 248삼진 FIP 2.56 WAR 6.1)를 누르고 코리 클루버(18승 ERA 2.44 269삼진 FIP 2.35 WAR 7.2)가 사이영상을 수상한 사례는 클래식 지표 상의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 WAR이나 FIP 같은 지표가 실제 수상자 선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세이버매트릭스 지표가 실제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2012년 FIP와 WAR 1위를 차지한 투수는 류현진(9승 ERA 2.66 210삼진 FIP 2.40 WAR 7.09)이었다. 하지만 그해 투수 골든글러브는 장원삼(17승 ERA 3.55 127삼진 FIP 3.11 WAR 3.76)이 수상했다.
2013년에는 마무리투수 손승락(46세이브 ERA 2.30 52삼진 FIP 2.80 WAR 1.77)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비록 그해 눈에 띄는 국내 선발투수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손승락의 WAR 순위는 전체투수 중 30위에 불과했다. ( 2012시즌 투수 WAR 1위: 리즈 4.73 RA9-WAR 1위: 찰리 8.68)
이러한 점에서 2014년 골든글러브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ERA-삼진 1위였던 밴덴헐크(13승 ERA 3.18 180삼진 FIP 3.71 WAR 6.38)를 제치고 밴헤켄(20승 ERA 3.51 178삼진 FIP 3.43 WAR 7.41)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이다.
물론 밴헤켄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절대적인 이유는 FIP나 WAR 때문이 아닌 20승 타이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세이버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투수에게 골든글러브가 돌아갔다. 때문에 올시즌 투수 골든글러브 경쟁도 흥미롭다. 2015 골든글러브 레이스는 클래식 지표가 뛰어난 투수들과 세이버 지표가 뛰어난 투수들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골든글러브 유력 투수 4인방의 주요 성적. ()는 리그순위를 나타낸다.
투수의 절대 덕목이 구속이 아닌 제구임을 알려주는 산 증거, 유희관 (사진: 두산 베어스)
8월 11일 기준으로 다승 1위를 달리고 있는 투수는 유희관이다. 유희관은 15승을 거두며 시즌 20승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발목 부상을 감안 7~8번 정도 남은 등판에서 5승 이상을 거두면 20승이 가능하다.) 훈련 중 발목 염좌 부상을 당하면서 우려를 자아냈지만, 8월 9일 LG전 7이닝 1실점 4삼진 호투로 승리를 따내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ERA는 3위지만 FIP는 9위에 그치고 있다. (평균실점율 기반 RA9-WAR은 6.71로 2위)
ERA 1위를 달리고 있는 투수는 양현종이다. 꽤 긴 시간 1점대를 유지하던 양현종의 현재 ERA는 2.49로 후반기 부진한 모습(5경기 ERA 5.68)을 보였음에도 여전히 ERA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FIP는 4.69로 리그 13위에 그치고 있다. (RA9-WAR은 7.21로 1위)
반복되는 후반기 부진을 극복해야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사진: KIA 타이거즈)
FIP로 봤을 때 최고의 투수는 벤헤켄이다. 벤헤켄은 다승에서는 공동 4위(11), ERA(3.76)에서는 9위에 그치고 있지만, 삼진-FIP-WAR 3개 지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RA9-WAR은 4.41로 9위)
위 3명의 선두주자를 최근 거세게 추격하고 있는 투수가 있다. 바로 NC 에이스 해커다. 올해 ‘에릭’에서 ‘해커’로 등록명을 바꾼 해커는 삼진을 제외한 승리(13)-ERA(2.83)-FIP(3.64)-WAR(4.52)에서 모두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최강 2인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 이후 리그 최상급 피칭을 하고 있는 해커의 활약은 각 지표 선두간의 골든글러브 레이스에서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염과 개명의 시너지 효과(?)로 거듭난 해커 (사진: NC 다이노스)
팀당 40경기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투수들의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아주 흥미로운 경쟁이 되고 있다. 클래식 지표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유희관, 양현종이 WAR이나 FIP 같은 세이버 지표 상으로는 그리 뛰어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지난 시즌에 이어 세이버 지표로는 최고의 투수인 밴헤켄은 지난해와 달리 클래식 지표 상으로는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다. 해커는 클래식-세이버 지표 양면에서 리그 상위권 활약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리그 수위를 차지한 부문은 없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각 지표별로 최고의 투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금 한국야구계가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지표가 무엇인지 알기 좋다는 것이다. 투표단이 승리를 중요시한다면 유희관, ERA를 중요시한다면 양현종, FIP와 WAR를 중요시한다면 벤헤켄이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것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투승타타'를 중시하는 한국 기자단의 속성 상 현 시점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후보는 유희관일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최고투수의 기준이 승리에서 ERA로 바뀌었고, 현재는 FIP와 WAR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통계적으로 투수의 ‘진짜 실력’을 평가하는 지표(통계적으로 노이즈가 적은 지표)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기류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고 해서 한국프로야구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역시 세이버메트릭스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기록과 통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상 아직도 많은 논쟁이 진행 중 이다. 최고투수의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그 시대가 정하는 상대적인 기준이다. 올시즌 투수 골든 글러버는 한국 프로야구의 현재 기준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길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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