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4

잠실

삼성

7 - 6

롯데

(승) 이호성 (패) 정수근 (세) 임창용 (홈런) 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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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이호성 (패) 정수근 (세) 임창용 (홈런) 김바위

STAT BUZZ
 STAT 리포트

정말 과학인가? '탈(脫)LG 효과' 연대기

2015-08-05 수, 01:27 By KBReport

‘탈(脫)LG 효과’ 상세분석 – 김상호에서 박경수까지

한국 프로야구에는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은어들이 많다. 이 은어는 프로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뭐야?”라고 말할 법한 단어임과 동시에, 프로야구 팬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이 은어들은 어휘량이 상당하다. ‘DTD’, ‘엘롯기’, ‘타어강’, ‘한마달’ 등 특정 팀에 대한 은어에서부터, ‘김별명’, ‘번저강’, ‘봉미미’, ‘임작가’ 등 특정 선수에 대한 은어들까지. 심지어는 ‘누헨진 션슈의 쏴클쵄쟙’, ‘모두까기 인형’ 등 특정 해설위원에 대한 은어들까지도 존재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은어라면 단연 ‘탈LG 효과’가 아닐까? 

‘벗어나다’라는 뜻의 ‘脫’과 ‘LG’의 합성어인 ‘탈LG 효과’는 LG를 떠난 선수들이 타 구단으로 이적한 후 유독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은어다. 물론 트레이드나 방출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좋은 성적을 올리는 다른 팀 출신 선수들도 적지 않지만, 유독 LG 출신의 선수들이 인상적인 ‘포텐 폭발’을 일으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 많은 야구 팬들에게는 ‘탈LG 효과’는 과학이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설에 어느정도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 ‘탈LG 효과’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선수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탈LG 효과’를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탈LG 효과’를 체험한 선수들을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살펴 보자.  


1990년대의 ‘탈LG 효과’

잠실 최초 홈런왕 – 김상호 

‘탈LG 효과’를 누린 최초의 선수는 바로 김상호. 1988년 MBC 청룡에서 데뷔한 김상호는 데뷔 후 첫 2시즌간 평균 10홈런을 때려내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1990년 MBC를 인수한 LG는 그의 컨택능력과 선구안에 의문을 품었고, 결국 김상호는 1990시즌을 앞두고 OB의 최일언과 트레이드되며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LG의 선택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최일언은 데뷔 후 6시즌간 평균 10.8승, ERA 2.56을 기록한 수준급 투수였던 반면, 김상호는 일발 장타 외에는 검증되지 않은 25살의 유망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상호-최일언 트레이드는 LG의 참패로 돌아갔다. 최일언이 1990시즌 3승, ERA 4.62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한 시즌만에 삼성으로 팀을 옮긴 반면, 김상호는 OB에서 연일 장타력을 과시하며 맹활약했다. 

김상호는 1992시즌 데뷔 첫 3할 타율을 기록한데 이어 1995시즌에는 타율 0.272, 25홈런 101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을 휩쓸며 OB에 우승을 안겼다. 잠실 최초의 홈런왕이라는 타이틀과 정규시즌 MVP는 보너스. 당시 김상호와 막판까지 MVP 경쟁을 펼쳤던 선수는 바로 LG의 이상훈이었다.

스위치 타격왕 – 박종호

스위치타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인 박종호 역시 ‘탈LG 효과’의 수혜자다. 물론 박종호는 다른 ‘탈LG’ 선수들과는 달리, 이미 LG 시절인 1994시즌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는 선수. 박종호는 1994시즌 타율 0.260, 21도루를 기록하며 LG 트윈스의 2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당시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박종호는 1995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포수 강성우와 충돌하며 손목이 골절되었고, 이후 2시즌간 평균 63경기 출장, 타율 0.237에 그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그를 기다리지 못한 LG는 1998시즌 도중 박종호를 현대 투수 최창호와 트레이드했다.

하지만, LG의 선택은 이번에도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최창호는 LG에서 4시즌간 3승, ERA 6.51에 그쳤지만, 박종호는 현대에서의 6시즌 모두 100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현대 왕조를 이끌었다. 2000, 2004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특히 2000시즌에는 역대 최초의 스위치타자 타격왕에 오르며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게다가 2003~2004시즌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이른바'비더레전드'의 시조가 되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프로야구 역대 최다경기 연속안타 기록으로 남아있다. 1994시즌 우승을 함께한 박종호를 떠나보낸 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한 LG, 이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2000년대의 ‘탈LG 효과’

‘용큐놀이’의 창시자 – 이용규

‘용큐놀이’의 창시자이자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로 꼽히는 이용규 역시 ‘탈LG 효과’의 작품이다. 2004년 2차 2라운드 15순위라는 상위순번으로 LG에 입단한 이용규에 대해, LG는 대체가 용이한 선수라고 판단했으리라 보여진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LG에는 이병규와 박용택이라는 수준급 외야수들이 있었고, 이용규보다 월등한 체격 조건을 갖춘 외야 유망주 이대형까지 버티고 있었기에 이용규에게 많은 기회를 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용규는 2004시즌 주로 교체 출전하며 52경기에서 62타수를 소화했고, 타율은 0.129에 그쳤다.

그리고 2004시즌 종료 후, LG는 이용규를 KIA로 트레이드했다. LG가 홍현우와 이용규를 내주고 KIA에서 이원식과 소소경을 받는 트레이드였는데, 대부분 최악의 ‘먹튀 FA’로 불렸던 홍현우가 친정팀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을 뿐, 피지컬 조건이 좋지 않은 외야 유망주 이용규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당시 이원식과 소소경 모두 A급이라고 보기 어려운 투수들이었다는 점은 LG가 이용규에 대해 얼마나 기대감이 적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용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형 외야수로 성장했다. 2005시즌 무려 124경기에 나서며 주전자리를 꿰찬 이용규는 2006시즌 타율 0.318, 78득점 38도루를 기록하며 데뷔 3시즌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6시즌의 활약 이후 이용규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고, 2011, 2012시즌에는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최정상급 외야수로 우뚝 섰다. 이용규는 올시즌도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로 활약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LG에서 이용규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인 리드오프 외야수는 없었다. 

그의 향상심과 근성은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LG가 그를 보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사진=한화 이글스]


‘탈LG’하자마자 MVP – 김상현

김상현 역시 ‘탈LG 효과’하면 빼 놓을 수 없다. 2000년대 가장 드라마틱한 ‘탈LG 효과’를 보여준 선수를 꼽자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 선수가 바로 김상현이다. 

김상현은 LG에서 꽤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했다. 군상상고를 졸업하고 2000년 해태에 입단한 김상현은 3루수 정성훈에게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02시즌 도중 LG 방동민과 트레이드되며 LG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김상현은 LG에서도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했다. 2002~2004시즌 평균 5.7홈런에 그쳤고, 2005~2006시즌 상무에서 맹활약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2007시즌 7홈런, 2008시즌 8홈런에 그치며 LG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LG는 김상현에 대한 기대감을 접었고, 2009시즌 초 KIA에 김상현과 박기남을 주고 강철민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LG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김상현은 KIA에 합류하자마자 괴물 같은 타격 능력을 보여주며 KIA에 10번째 우승을 안겼다. 2009시즌 김상현의 성적은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 그는 2009시즌 홈런왕, 타점왕을 휩쓸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당시 LG는 8개구단 중 7위를 기록했다. (트레이드 상대였던 강철민은 긴 재활 끝에 2010년 복귀했지만 3G 11.2이닝에서 5.40의 방어율을 남기고 결국 은퇴)

김상현은 이후 2009시즌과 같은 몬스터 시즌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2010시즌, 2011시즌 각각 21홈런, 14홈런을 때려내며 나름의 몫을 해냈고, 올 시즌 kt에 입단한 이후에는 kt의 중심타선을 지키며 17홈런 5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올 시즌 LG의 타자들 중 김상현보다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김상현보다 많은 타점을 기록한 선수 역시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2009년 같은 몬스터시즌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수년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신생팀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2015 김상현도 놀랍다.  [사진=kt 위즈]


2010년대의 ‘탈LG 효과’

‘국민 거포’ – 박병호

LG에게 박병호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일찌감치 대형 타자의 자질을 드러낸 박병호는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LG에 1차 지명되며 기대를 모았다. 당시 LG가 박병호에게 안겨준 계약금은 무려 3억 3천만원. LG가 박병호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애증의 대상이던  LG시절 박병호 (사진: LG트윈스) 

하지만, 박병호는 좀처럼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며 LG에 실망감을 안겼다. 2005~2006시즌 127경기에 나서 고작 8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쳤고, 상무 제대 이후인 2009~2010시즌에도 평균 8홈런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파워는 대단하지만 1군만 올라오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 이것이 LG가 박병호에게 내린 평가였다.  (4시즌동안 박병호에게 부여된  기회는 641타수. 이게 충분한 기회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박병호는 2011시즌에도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7월 31일까지 박병호가 기록한 성적은 16타수 2안타 1홈런. 결국 기다림에 지친 LG는 박병호를 포기했다. LG는 트레이드 기한을 몇 시간 남긴 시점에서 넥센에 심수창과 박병호를 주고, 송신영과 김성현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당시에는 LG가 이득을 보는 트레이드라는 평이 많았다. 당시 송신영은 9세이브, ERA 2.36으로 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었고, 김성현은 선발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다시 LG의 선택은 실패했다. 송신영이 2012시즌 한화로 이적하며 송신영을 단 한 시즌밖에 쓰지 못했고, 김성현은 2012시즌 승부조작 사건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반면 박병호는 이적 후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마냥 연일 맹타를 휘둘렀다. 박병호는 2011시즌 넥센에서만 12홈런을 때려내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12시즌 31홈런-105타점, 2013시즌 37홈런-117타점, 2014시즌 52홈런-124타점을 터트리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2012~2014시즌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12, 2013시즌에는 2시즌 연속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게다가 올 시즌 역시 홈런(35)-타점(96) 1위를 달리며 역대 최초의 4시즌 연속 홈런/타점왕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LG는 구단 역사상 역대 최고의 선수로 기억될만한 대타자를 놓쳐버린 셈이 됐다.

LG가 박병호을 보내지 않았다면 현재의 박병호는 어떤 모습일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거박'이라는 악플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최초의 200안타 타자 – 서건창

서건창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중,고교 시절 부상에 시달렸고, 체구마저 크지 않아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대학 진학마저 포기하고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6월 정식 선수로 등록된 이후 7월 기회를 얻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결국, 서건창은 다시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LG에서 방출됐다. 이후 한화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탈락했고, 군 복무를 위해 지원한 경찰청마저 탈락했다. 서건창은 야구 선수로서는 드물게 현역으로 입대해 병역의 의무를 수행했다. 물론, 현역 복무 중에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던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은 서건창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제대 후 넥센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고, 스프링캠프에서 주목을 받으며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됐다. 

이후에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주전 2루수 김민성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연일 맹활약하며 김민성을 3루로 밀어냈고, 2012시즌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2014시즌에는 프로야구 최초로 단일시즌 200안타를 때려내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만약 LG가 서건창을 방출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를 줬다면 오늘날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오지환-서건창이라는, 젊고 역동적인 키스톤 콤비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항상 흙투성이인 서건창의 유니폼. 그의 집념과 노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2015 시즌의 ‘탈LG 효과’

장타력 장착한 천재유격수 – 박경수


박경수는 고교 시절 ‘성남고 천재 유격수’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던 선수였다. 2003년 박경수가 LG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면서 받은 계약금은 4억 3천만원. 엄청난 액수의 계약금으로 미루어보아 알 수 있듯, 당시 유지현의 뒤를 이을 대형 유격수감이 절실했던 LG는 박경수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박경수는 LG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03시즌 타율 0.273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후 LG에서의 9시즌간 단 한 차례도 타율 2할 7푼을 넘기지 못했다. 박경수가 LG에서의 10시즌간 기록한 타율은 0.241. 준수한 선구안과 견실한 수비력 덕에 대부분의 시즌을 주전으로 출장했지만, 기대치 만큼의 활약은 해내지 못했다.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LG는 박경수와 작별했다. 박경수는 신생팀인 kt와 4년간 총액 18억 2천만원의 FA 계약을 맺었고, 박경수와 LG의 길었던 동거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동안 위와 같은 ‘탈LG 효과’의 사례들이 쌓여왔음에도, 팬들은 박경수의 계약에 의문을 표시했다. ‘탈LG 효과’를 누린 기존의 선수들과 달리 충분한 기회를 얻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박경수에게조차 ‘탈LG 효과’는 예외가 아니었다. 박경수는 3~4월(0.240)과 5월(0.213)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며 kt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지만, 6월(0.282) 타격감을 끌어올린데 이어 7월(0.423/8홈런/OPS 1.489) 대폭발하며 kt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지난 10시즌간 평균 4.3홈런에 그쳤던 그가 올 시즌 무려 14홈런을 폭발시킨 것은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대반전. 올 시즌 LG가 마땅한 주전 2루수를 확보하지 못한채 박지규, 손주인, 황목치승 등을 ‘돌려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박경수와 이별을 택한 LG의 선택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드디어 꽃을 피운 ‘성남고 천재 유격수’ 박경수. 이 기세라면 20홈런도 충분하다. [사진=kt 위즈]

글로벌 ‘탈LG 효과’ – 브래드 스나이더

 
브래드 스나이더는 2014시즌 LG의 외국인타자 조쉬 벨의 대체 외국인타자로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밟았다.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 강한 어깨, 준수한 스피드에 일발 장타까지 갖춰 기대감이 컸다. 게다가 192cm/96kg의 단단한 체격에 준수한 외모까지 갖췄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LG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9볼넷을 얻어내는 동안 무려 31삼진을 당하며 최악의 선구안 능력을 보였고, 도루성공 없이 도루실패만 2차례를 기록했다. 37경기에서 4홈런을 기록한 것은 잠실구장이 홈임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기록은 아니지만, LG가 기대했던 바에는 미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스나이더는 포스트시즌에서 30타수 13안타 2홈런 6타점을 기록하는 반전활약에도 불구하고 LG와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넥센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나이더를 잽싸게 낚아챘다. 이미 2011시즌 박병호, 2012시즌 서건창을 통해 ‘탈LG 효과’를 확인했으며, 스나이더의 포스트시즌 활약을 직접 보면서 그의 능력 또한 확인했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스나이더는 넥센의 기대에 보답하며 ‘탈LG 효과’가 외국인 선수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임을 증명해나가고 있다. 3~4월(0.184), 5월(0.256) 부진하며 퇴출설이 나돌았지만 넥센은 그를 끝까지 믿고 기용했고, 스나이더는 6월(0.314), 7월(0.384) 완벽하게 살아나며 넥센 타선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6월 5홈런, 7월 4홈런으로 장타력이 점점 살아나고 있는 상황. 잭 한나한을 퇴출하고 데려온 루이스 히메네스가 타율 0.226, 4홈런 16타점에 그치고 있는 LG로서는, 포지션 사정 상 함께할 수 없는 선수였다쳐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에게도 통하는 ‘탈LG' 효과’. 
 스나이더가 잔류했더라도  3~5월의 스나이더라면 LG는 기다리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박병호 Ver.2 ? – 정의윤도 ‘탈LG 효과’ 누릴까

앞서 ‘탈LG 효과’의 대명사격인 선수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물론 LG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이 모두 맹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팀에 비해 이적 후 맹활약한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 특히 LG가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한 선수들 중 MVP를 차지한 선수가 무려 4명이나 된다는 점은  LG 구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다음 ‘탈LG 효과’의 주인공은 어떤 선수가 될까? 현재 많은 팬들이 주목하고 있는 선수는 최근 SK로 트레이드된 정의윤이다. 정의윤은 LG 시절 여러모로 박병호와 비교되었을 정도로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선수. 장타력은 박병호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타격의 정확성은 오히려 정의윤이 앞선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 박병호가 LG시절 1할대의 타율(0.192)에 그친 반면, 정의윤은 타율 0.262로 월등한 타격 정확도를 보였다.

SK 이적 후 8경기에서 22타수 8안타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0.364/OPS 0.962)을 뽐내고 있는 정의윤도 과연 ‘탈LG’연대기의 한 장을 장식할 수 있을까? 그의 향후 행보를 주의깊게 지켜보도록 하자.

LG는 결국 정의윤을 보냈다. 정의윤 역시 '탈LG' 연대기의 한장을 장식할 것인가?  [사진: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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