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날 8월 23일.’ 베이징의 그 날과 그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독도를 넘어가는 이승엽의 홈런, 후배에게 미안했다던 그의 눈물, 김현수의 감각적인 컨택, 류현진의 완봉승, ‘고마워요, G.G 사토’ 정근우의 투혼, 이용규의 기도, 강민호의 불꽃 글러브, ‘국내 최고의 싱커볼 투수의 병살 유도.’, 고영민의 더블 플레이, 그리고 마운드에 꽃은 태극기를 기억하십니까.
2008년 8월 23일 9전 9승, 전승으로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최초로 야구 금메달을 따낸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2009년부터 KBO는 베이징 올림픽 전승을 기념하며 8월 23일을 ‘야구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KBO에서는 입장료 할인이나 선수의 사인회 등 각종 행사를 하지만 아직은 홍보가 미미한 상태인가 봅니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금메달 수상 주역들의 근황을 살펴보는 것으로 소소한 기념을 해볼까 합니다. 7년이 지난 현재, 그때의 영웅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의 각양각색 표정.
팬들의 박수를 받지 못하고 무대를 떠난 이들의 얼굴도 보인다.
(사진 출처: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베이징 올림픽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기자는 일본과의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의 인터뷰를 했던 이승엽 선수를 꼽고 싶습니다. 당시 이승엽은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예선 7경기에서 22타수 3안타. 고작 1할 3푼 6리의 타율.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이승엽을 계속 출전시켰고, 많은 이들이 김경문 감독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 반응에 대해 김경문 감독은 딱 한마디로 잘라 말했습니다.
“중요할 때 한 방만 쳐주면 된다.”
국가가 인정한 합법적 병역 브로커 (사진: 삼성라이온즈)
예선을 7전 전승으로 이기고 진출한 준결승전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습니다. 이승엽은 어김없이 4번 타자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앞선 타석에서 삼진, 이후 병살타, 삼진. 타율은 1할 2푼으로 내려갔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뚝심이 아닌 지독한 고집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대2로 팽팽하게 맞선 8회, 1사 1루 상황.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상황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랐을 것입니다. '대타를 쓰라고'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타석에는 1할 2푼의 타자 이승엽이 들어섰고 상대 마운드에는 좌완투수 이와세가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볼카운트는 1-2, 이번에도 삼진일까. 몸 쪽 공을 요구하는 야노, 그리고 이와세가 몸 쪽 패스트볼을 던졌고, 이와세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기 전, 이승엽은 공을 잡아당겼습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하늘을 비행했습니다.
'깊은 우익수 플라이쯤 되려나. 이번에도 아웃이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공은 더 오래 공중에 떠있었습니다. 천천히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처럼, 카메라는 공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공을 쫓았고, 우익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공은 담장을 넘고 나서야 짧고도 긴 시간의 아름다운 비행을 마쳤습니다. 너무나도 안전한 착륙. 역전 투런 홈런. 점수는 4-2, 순식간에 경기가 기울어졌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선택이 뚝심으로 인정받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덩치 큰 사내가, 아시아의 홈런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 사내가, 그렁그렁해진 눈물을 애써 참으며 류현진을 꼭 끌어안고는 등을 두들겨주던 모습은 그의 마음고생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는 무슨 상념에 잠길까요. 경기가 끝난 후, 후배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던 이승엽, 짐이 되기 싫어 후배 김현수에게 직접 찾아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치느냐?’라고 진지하게 물어본 이승엽.
그는 3년 전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와 불혹의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3할 5푼 3리의 타율로 리그 4위이며 홈런 22개를 기록하며 홈런 부문 10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시즌엔 KBO 최초 400홈런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마흔 넘은 아저씨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성적입니다. 언제나 배우고 연습하며, 자기반성하는 그를 더욱 오랫동안 경기장에서 볼 수 있길 바래봅니다.
궁내 채고의 씽카볼 투수였던 증대현 선수 (사진:롯데 자이언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의 9회 말 역시 짜릿했습니다. 2실점으로 호투하던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 소속)이 구심의 빡빡한 스트라이크 존과 긴장감 탓인지 안타 이후 2타자를 연속해서 볼넷으로 내보내며, 1사 주자만루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점수는 3-2 한 점차 상황, 안타 하나면 끝내기, 깊숙한 외야 플라이가 나온다면 동점을 주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사 1,2루 상황에서 벨이 또 볼넷으로 출루하자, 구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불만을 품고 있던 강민호가 구심에게 항의를 하다 퇴장을 당하는 돌발 상황이 연출됩니다. 결국 김경문 감독은 몸 상태가 좋지 못한 포수 진갑용*을 투입시키고, 투수는 ‘국내 최고의 싱커볼러’ 정대현으로 마운드를 교체 합니다.
1사 만루 2-1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상대 타자는 구리엘.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2구째, 진갑용 포수는 바깥쪽 빠지는 공을 요구했으나, 정대현 선수의 실투가 나옵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 살짝 몰린 공을 구리엘이 가만히 지켜보며 볼 카운트는 0-2가 됩니다.
결국 구리엘은 불리한 카운트에서 성급하게 배트를 냈고, 결과는 유격수 앞 병살타. 유격수가 2루수에게 토스, 2루수 고영민이 불안한 자세에서 다시 1루수에게 송구. 그리고 ‘6-4-3 병살.’ 의 완성. 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은 그렇게 극적으로 확정됐습니다. 그 어떤 연극보다 더 극적이었고, 현실이었기에 더욱 리얼했던 날이었습니다.
7년전 그 날의 주역들은 대부분 선수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김현수나 강민호와 같은 젊은 타자들은 팀의 주축으로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대표팀 에이스 류현진은 2013시즌 이후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을 해서 이미 28승을 올렸습니다. 이번 시즌은 안타깝게도 수술과 재활로 안식년을 보내고고 있지만 말입니다.
당시에 ‘석민 어린이’라는 별명이었던 윤석민 선수는 벌써 30세가 됐습니다. 볼티모어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아쉬웠습니다. 이번 시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KIA타이거즈의 뒷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ERA 3.36 25세이브 6블론 56.1이닝 WAR 1.97)
‘일본 킬러’ 김광현 선수는 2010년 이후 부상으로 고전을 하다, 2014년 이후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시즌 이후 MLB진출을 노렸지만, 생각보다 적은 포스팅 금액에 해외 진출을 뒤로 미뤘습니다. (11승 7패, WAR 3.67)
당시 일본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이용규 선수는 KIA 타이거즈에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고, 최근 친정팀 KIA의 후배 양현종 선수를 상대로 전매특허인 ‘용규놀이’ 시즌 2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권혁 선수와 정근우 선수 역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올시즌 나란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꽃 남자’ 강민호 선수는 롯데와 대박 FA 계약을 맺은 후 지난 시즌 부진했지만, 이번 시즌 완전히 부활하며 포수 역사상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민호 시즌 AVG 0.313 29홈런 OPS 1.075 WAR 6.29)
그 당시 이미 완성형 타자이던 김현수는 이후, 발전이 없는(?) 타자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조금의 성적 하락세는 있었지만요. 이번 시즌이 끝나면 생애 첫 FA라는 경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동주 선수와 진갑용* 선수는 모두 은퇴했습니다. 김민재 선수는 2009년을 끝으로 은퇴를 했고, 현재는 kt의 주루코치로 경기장에서 뵐 수 있습니다.
‘뜨블플레이’의 주인공인 정대현 선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오퍼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 했으나, 몸 상태에 문제가 생겨 국내에 남아 롯데로 이적했었습니다. 이후 부상의 문제로 부진했고, 올 시즌에도 아직 예전의 모습은 아닙니다.(8경기 8이닝 ERA 5.62)
금메달을 결정지은 병살플레이의 주역인 고영민 선수 역시 지난 3년간 1군 무대에서 고작 94경기만 모습을 보였으며, 이마저도 대수비 등으로 교체 출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올시즌에는 수비 시 위험한 플레이로 서건창 선수의 부상을 초래하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이진영 선수, 박진만 선수, 장원삼 선수, 이택근 선수, 봉중근 선수, 송승준 선수, 이종욱 선수도 모두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대호 선수와 오승환 선수는 모두 일본 리그로 떠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잊을 뻔 했군요. 올림픽 기간 마음 고생이 가장 심했을 한기주 선수는 이후, 부상과 수술, 길고 긴 재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천일의 기다림 끝에 돌아왔습니다.(7경기 8.1이닝 ERA 3.24)
신체가 노쇠함에 따라 성적의 하락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미 선수생활을 접었거나,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들어선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성적이 변하고, 은퇴를 하고, 야구계를 떠나고. 2008년의 감동도 그 때보다 바랬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추억은 시간이 지나고 바랠수록 아름다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추억이 그들만의 추억이 아닌,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었기에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p.s-우리에게 고마운 G.G 사토 선수는 2013 지바롯데 마린스에서의 선수생활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여, 유명 만화 '시마 과장'의 동명 주인공을 목표로 샐러리맨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지수 기자 (kbr@kb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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